
"절망도 실패도
아무 의미 없지 않아."
비아트리스 서커스 단장
이름
우노마치 헤이시
卯之町 兵士
Unomachi Heishi
키/ 몸무게
179cm / 69kg
나이
21세
국적
일본
비아트리스 서커스단장
타고난 리더십과 말솜씨로 대중의 이목을 사로잡는 서커스단의 단장. 공연을 준비하고, 총괄하는 기획자의 업무를 주로 맡는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어린 아이, 청소년일수록 그의 공연에 쉽게 매료된다고 한다. 덕분에 치솟는 인기와 유명세는 학생들 사이에서 사회적 반향까지 일어날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재능이 퍽 마음에 들었다. 처음엔 생존을 위해 시작한 일이었지만, 어쩌면 아이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과 그들을 이용하는 어른들에게 복수하고 싶은, 절망과 염원이 재능으로 피어나 사람들의 마음을 끄는 것일지 모른다. 그리고 이 세계에서 그의 재능이 피어난 이유 또한, 그런 것이리라. 누군가의 마음을 사로잡아, 즐겁고,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그의 맹목적인 애정과 헌신의 표현.
전생의 삶
우노마치 헤이시는 일본의 산간 지역에 위치한 폐쇄적이고 역사 깊은 어느 마을의 문제가문, ‘우노마치(卯之町)’가에서 태어났다. 먼 옛날의 권력다툼에서 다른 권력가문에 패한 일족이었던 그의 가문은 마을 내의 왕따나 다름 없었고, ‘반란분자’, ‘분열을 일으키는 일족’으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런 환경 속의 가정이란 당연스럽게도 불행한 것이었다. 부모님의 방임과 가족 간의 불화는 어린 헤이시를 겉돌게 만들었고, 그는 집 밖에서 친구를 사귀는 것으로 외로움을 달래려 했으나 타고난 천성에 비해 생각만큼 또래들과 어울리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헤이시는 부부싸움 도중 감정이 격해진 부모님의 폭력을 피해 마을 내 최고 권력가문인 ‘아사무라(朝村)’가(家)의 저택으로 향했다. ‘아사무라’가의 사람들은 ‘우노마치’가의 자신들을 핍박하는 주축이자, 오래 전의 권력다툼에서 승리한 일족이었다. 때문에 사실 헤이시에게 그곳은 악의 소굴이나 다름 없었지만, 그는 단순히 이곳은 들킬 염려가 적다고 생각하여 그 저택의 정원에 숨어들었다.
그는 그곳에서 ‘아사무라 케이지(朝村 刑璽)’라는 이름의 한 소년을 만났다. 동갑내기였던 그 소년은 낯선 헤이시를 반갑게 맞아주었고, 마음이 맞았던 두 사람은 금세 좋은 친구가 되었다. 이후로 헤이시는 집의 분위기가 안 좋을 때에 언제나 아사무라가(家)의 정원을 찾았고, 케이지와 단둘이 평화롭고 즐거운 시간들을 보냈다.
몇 차례의 계절이 지나, 조용하던 마을이 축제 준비로 떠들썩해지는 시기가 찾아왔다. 헤이시는 친구인 케이지와 함께 축제를 즐길 수 있기를 바라며 축제 전날, 여느 때처럼 그가 기다리는 정원을 찾았다. 그러나 케이지는 그에게 평소보다 조금 시무룩한 얼굴로 “더이상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만을 남겼다. 이유도, 전후사정조차 들을 수 없었다. 달라진 친구의 태도에 헤이시는 불길한 예감을 지울 수 없었다.
축제 당일, 헤이시는 마을 어른들로부터 믿을 수 없는 말을 듣게 된다. ‘아사무라 가의 도련님이 끝내 오늘 밤 제물로 바쳐진다.’ 자세한 사정은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헤이시는 케이지가 했던 ‘더이상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의 의미만큼은 눈치챘다.
그 날의 축제는 화려하고 성대하게 진행되었다. 폐쇄적인 마을에 외부인들이 찾아와 왁자지껄 했고 마을의 풍경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고 밝았다. 초저녁이 되자 화려한 기모노와 게다를 신은, 축제의 주역 ‘아사무라 케이지’가 안대를 착용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은 어리고 아름다운 제물의 생전의 모습을 두 눈에 담으려 서로 앞을 다투었다. 그 광경을 두 눈 뜨고 지켜볼 수 없었던 헤이시는 결국 케이지를 구출해내기로 마음 먹었다.
해가 지고 축제가 막을 향해 달릴 무렵, 헤이시는 결국 산 속 깊은 신사에서 죽을 순간만을 기다리던 케이지를 찾아냈다. 그는 케이지의 손을 잡고 마을을 빠져나갔다. 두번 다시 고향에 돌아오지 않을 생각이었다. 두 사람은 한참을 숲을 달렸고, 밤하늘에는 축제의 끝을 고하는 불꽃이 피어났다. 두 사람은 언젠가 밤하늘의 불꽃을 다시 함께 보자고 약속하며 마을을 뒤로 했다.
고향을 떠나온 두 사람은 한동안 노숙 생활을 이어갔다. 어른들을 믿지 못 했던 헤이시가 외부 사회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을 반대했기 때문이었다. 배고픔은 온전히 온정의 손길에 기대어 해결하며, 오랫동안 이 마을 저 마을을 떠돌아 다녔다. 고된 시기의 끝에서, 그들은 자신을 종교인이라 소개하는 한 남자를 만났다.
남자는 두사람에게, 자신이 운영하는 보육원으로 가서 생활하자며 손을 내밀었다. 헤이시는 내키지 않았지만 소중한 친구를 언제까지고 길 위에서 생활하게 하고싶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들의 사정을 설명한 후, 마을로 돌려보내지 않을 것을 조건으로 남자의 뒤를 따랐다. 남자는 보육원에서 자신을 ‘단장’이라고 부르기를 요구했고, 두 사람은 하는 수 없이 그의 요구에 응했다.
긴 여정 끝에, 헤이시와 케이지는 단장이 운영하는 보육시설에 도착했다. 그 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연령대의 어린아이들이 자신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대다수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가족을 잃고 떠돌다 단장에게 거두어진 아이들이었다. 케이지와 헤이시는 시설에 잘 적응해 나갔다. 특히 케이지는 타고난 호감형 외모 덕분인지, 어느 새인가 보육원 아이들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 친구들은 케이지를 단순한 친구 이상으로 깊게 생각하며 그를 보호하려 했다.
헤이시는 조금 쓸쓸한 기분도 들었으나, 어느새 다행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유는 보육원의 비밀 때문이었다. 해당 시설은 갈 곳이 없는 천애고아들을 갖은 수단을 써 ‘단장’의 말을 따르도록 세뇌시킨 뒤, 사이비 종교의 사기극에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이었다. ‘친구들’의 부탁에 케이지는 아무런 피해도 받지 않았지만, 평범한 원생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인체실험을 받거나 운동, 곡예 등의 ‘재주’를 익혀야 하는 등 사이비 종교인들이 필요로 하는 ‘기구한 삶의 주인공’을 연기할 수 있도록 훈련을 받아야만 했다. 헤이시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타고나길 남들보다 건강했던 헤이시는, 단장의 명령 하에 불법 의사들의 실험체가 되어야 했다. 처음에는 신기하게도 그 어떤 위험한 실험에도 그의 몸은 부작용을 보이지 않았다. 이를 들은 단장은 헤이시의 몸을 더욱 더 이용하기 시작했고 그는 어느 새 보육원보다 실험실에 갇혀 지내는 날들이 더 많아졌다. 그가 거부하거나 반항하면 단장은 어김없이 케이지를 인질로 삼았다. 친구를 희생시킬 수 없었던 헤이시는 자신에게 닥치는 고통들을 온전히 홀로 감내해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다 쓰여진 배터리처럼 생기가 넘치던 겉모습은 볼품없이 변해버렸다. 부작용으로 부분 부분 희게 샌 머리카락과 강제로 이식받은 의안을 보며 헤이시는 자신이 악당이 만들어낸 괴물처럼 느껴졌다.
어느 늦여름, 한밤중에 실험실에서 보육원으로 돌아온 헤이시는 케이지의 방을 찾았다. 변해버린 자신을 따뜻하게 맞아줄 친구를 만나고 싶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잠에서 깬 케이지는 헤이시의 몸에 생긴 이변을 눈치채고 즉시 단장을 찾아가 영문을 따지기 시작했고, 비극이 일어났다.
단장은 두 소년을 방 깊숙한 곳에 밀친 후, 방문을 잠그고 케이지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그는 케이지에게 ‘네가 이렇게 호의호식 하는 것은 네 친구들 덕분이다’라며 욕설과 손가락질을 했다. 단장이 케이지를 공격하자 격분한 헤이시는, 언젠가 연구실에서 주웠던 아미나이프를 주머니에서 꺼내 손에 쥐었다. 그리고 헤이시는 단장을 아예 죽여버릴 심산으로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헤이시가 나이프로 찌른 것은 단장이 아닌, 그를 막아선 친구의 흉부였다.
제 손에 자상을 입고 쓰러진 케이지를 넋 놓고 바라보던 헤이시는 끝내 이성을 잃었다. 분노를 통제할 수 없었던 그는 절규하며 닥치는대로 단장의 가슴과 배, 몸을 찔렀다. 비명소리와 고통에 찬 신음소리가 정적을 가르다 완전히 사라졌을 무렵, 헤이시의 정신은 완전히 붕괴되어 버렸다.
보육원의 친구들이 넋을 잃은 그를 발견했을 때, 헤이시는 마치 죽은 케이지처럼 웃고 그의 말투를 흉내내었다. 친구를 죽였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방어기제가, 그 날 그 곳에서 죽은 이가 ‘아사무라 케이지’가 아닌, ‘우노마치 헤이시’라고 믿게 만든 것이었다. 마찬가지로 케이지를 좋아하고, 그를 잃고 싶지 않아했던 보육원의 친구들은 같은 방어기제로 ‘자신들이 사랑하는 케이지가 헤이시의 몸에 씌였다’는 착각을 믿었다.
우노마치 헤이시. 아니, ‘아사무라 케이지’는 살아남기 위해, 친구들에게 보육원을 떠나자고 제안했다. 나쁜짓을 하던 단장은 자신이 무찔렀다며 미소짓는 그를 따르지 않는 원생은, 놀랍게도 단 한명도 없었다. 새로운 ‘단장’을 사랑했던 그들은, 그와 함께 시설을 떠났다.
몇 년 뒤, 젊은 단장이 이끄는 서커스 공연이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 결코 사회에 수용될 수 없을 법한 기묘한 젊은이들이 피로하는 마술과 묘기, ‘야비하고 잔인한 어른’을 향한 재치와 풍자로 가득한 토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사무라 케이지’의 이름을 내세운 헤이시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