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형이 곧 떨어진다에
2코인 건다. "
이름
천수아
天秀雅
Cheon Sua
키/ 몸무게
182cm / 77kg
나이
21세
국적
대한민국
전생의 삶
천수아, 천수호. 둘은 유복한 집안에서 나고 자랐다.
정확히 말해서는 유복했지만 엄격하며, 위계질서가 확실한 정부집안에서 자랐다. 어머니는 군인, 아버지는 국회의원. 그 외 친척 다수가 모두 정부에서 한 자리 하는 집안. 모든 일을 계획에 맞추어 사는 부모에게 쌍둥이란 존재는 커다란 변수였다. 아이들이 둘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부터, 부모는 결정했다.
‘ 한 명만 제대로 키워내자. ‘
202X년, 유독 아이들의 육아에 대해 말이 많은 시기였다. 어릴 때의 정서를 위하여 아이들이 원하는 대로 하게 했다. 귀여운 인형을 모으거나, 병아리를 키운다거나.
부모님은 쌍둥이를 ‘관찰’했다. 방임은 아니었으나, 원하는 바를 들어주면서도 아이들의 행동을 주의깊게 살폈다. 그리고 쌍둥이가 고작 열 살이었을 때, 부모는 수아를 택했다. 수아는 운동신경이 좋았고, 무엇이든 평균 이상으로 잘 해내며, 무엇보다 자기주장이 확실한 아이였음으로. 그 때부터는 행동에 말이 따라붙었다. 네가 15살이 되면, 훈련을 받게될 것이고, 네가 원하는 것은 그때까지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수아는 5년 간 질리도록 들어온 그 말을 규칙으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15살때까지를 즐겼다. 그리고 15살이 되는 해, 순순히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엉덩이까지 오는 머리를 자르고, 인형 대신 칼과 총을 들었으며, 식단을 조절하고 군사학을 배우며 감정을 절제하는 법을 배웠다. 이를테면 조기교육이었다.
훈련은 고달팠다. 15살이 되기 전까지는 무엇을 위한 훈련인지도 제대로 듣지 못했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자신은 어머니를 따라 군인훈련을 받는 것이라고. 반항은 하지 않았다. 결국은 군인이 될 자신을 위한 것이었고, 자신이 따라야 하는 규칙이었으니까. 하지만 훈련은 숨이 찼으며, 비위생적이었고, 가끔은 끔찍하기까지 했다. 허벅지가 터지도록 걷는 날도 있었고, 제대로 서지 못해 혼나는 일도 자주 있었다. 학교수업과 훈련을 받은 채 늦게 집에 돌아오면 당연하게도 언니가 맞이했다. 가끔은 언니가 미웠다. 본인은 죽도록 고생하는데, 언니는 자유로워서. 그것이 언니의 잘못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이 곱게 나가지 않았다. 그래서 피해다녔다. 언니라는 호칭을 버리고 딱딱하게 천수호라는 이름으로 부르기 시작했고, 집에 돌아오면 건성으로 인사한 후 방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수호는 문 틈 사이로 몰래 과자봉지를 밀어넣으며 응원의 말을 했다. 수아는 수호를 온전히 미워할 수 있을리가 없었다.
20살, 바로 군에 자원입대했다. 진급은 시간문제였다. 직업군인으로서 하사부터 시작하여 훈련부터 남들과는 다른 역량을 보였다. 그 누구도 그의 집안을 들먹이며 낙하산이라고 따질 수 없었다. 처음 중사로 진급하기까지는 겨우 2년이었다.
25살, 국가 간의 문제로 흉흉해진 분위기 속에서 스파이를 잡아 죽였다. 첫 살인이었다. 상황을 고려해 징계는 받지 않았다. 다만 훈련과 실전은 다소 차이가 있었다.죽기 직전의 그 목소리가 귀에서 맴돌았다. 휴가를 냈다. 집 구석에 처박혀 있자니, 수호가 자신이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며 다가왔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자신이 죽게 되니, 당연한 것’ 이라고 최면을 걸었다. 원래부터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이 죄책감을 덜었다. (-이것은 곧 수아의 좌우명이 되었다.)
그때부터, 조금씩 기억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훈련 날짜를 저번 달과 헷갈리거나, 동료와 대화를 나눈 ‘ 사실’조차 잊거나, 가끔은 심지어 기밀 사실까지 잊어버리기도 했다.(-마지막은 다행히도, 서류철을 보고 혼자 깨달았다.) 이 기억 상실은 작전에 투입되었다 막 돌아왔을 때마다 두드러졌다. 주위에서는 작전 후유증으로 여기고는 암묵적으로 모르는 척 했다. 수아 또한 이상한 점을 알아챘지만, 모른 척 했다. 알아채지 못한 척 회피할 수 있는 문제였으니.실제로도 시간이 갈수록 최면에 의지하는 일이 적어짐과 동시에 기억이 어긋나는 일 또한 확연히 줄어갔다.
이후로 크고 작은 전투를 겪으며 착실하게 실적을 쌓았다. 상사, 소위, 중위, 대위.. … ...결국 34살의 젊은 나이로 장군의 자리에 올랐다.
동맹국의 전쟁 소식이 전해졌다.
수아와 수호를 포함한 국군 일부가 파병했다. 최전방의 젊은 사령관은 거듭된 전투에서 연승을 거두었다. 몇 달 간의 전투 끝에 기세는 완전히 기울어져 동맹국의 승리로 끝날 것 처럼 보였다.마지막 작전은 적군 기지를 삼면으로 둘러싼 채 공격하는 것으로, 성공한다면 적군에게 확실하게 항복을 받아낼 수 있다고, 수아는 장담했다.
...
국군은 패배했다.
동맹군에 배신자가 숨어있었다. 수호가 심문해 알아낸 적군 기지는 전달 과정에서 왜곡되어 알려졌고, 이변을 눈치챈 수아는 계획을 수정해 일부 병력을 다른 위치로 보냈다. 도착한 적군 기지는 비어있었고, 알아차렸을 땐 포위당한 채였다. 그래도 완전한 패배는 아니었다. 빼낸 일부 병력이 포위망을 뚫었고, 원래라면 전멸했을 군의 절반을 살렸지만, 수아는 적군이 쏜 총에 치명상을 입어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사망하는 순간 주마등처럼 수아는 떠올렸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적군 기지의 위치부터 잘못되어 있었다. 그 위치는 천수호가 알아내지 않았었나.
...
생각해보니 줄곧 그랬다. 천수호에게 최면을 받은 다음 날이면 기억이 비어있었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것 까지도. 원래라면 군과 상관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었으면서 굳이 자신과 가까운 군의 심문관으로 들어와 있었던 것도 어쩌면. 그렇다는 건 천수호가, 나를.. …
총알이 심장에 박혔었나. 가슴이 저렸다. 눈을 감았다.
─
13살의 수아는 꾸미는 것을 좋아했다. 인생의 쓴 맛이라고는 하나도 맛보지 않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입이 얼얼할 정도의 단 맛 뿐인 인생이었다.
언니는 괴짜였지만 다정했고, 나름대로 잘 맞는 쌍둥이이자 둘도 없는 친구다. 내가 꾸며주면 귀찮아 하면서도 꼬박꼬박 받아주는 언니를 싫어할 이유는 없었다.
